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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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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내 이야기는 사라지고 타인의 이야기로 체워지고 있습니다. 왜? 어쩌다? 이렇게 되어가는 것일까요?


타인의 이야기

내 삶에 내 이야기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내 삶에 타인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데,
내 삶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지고만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 삶은 아이에 대한 이야기로 체워가는 것 같습니다.
제 어머니 보면 온통 자식과 손자 손녀 이야기입니다.
저와 어머니의 대화 소재는 대부문 건강입니다.
이야기라기 보다는 단순히 걱정거리 대화입니다.

어쩌다 이야기가 사라지는 걸까요?
어쩌다 내 이야기가 사라지는 걸까요?

삶에
흥미진진한 일들이 없어서 일까요?
재미있는 일들이 없어서 일까요?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습관이 않되서 안 돼서 일까요?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만큼의 여유가 없어서 일까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살 것 같은데
내 이야기로 내가 즐거운
내 이야기로 가족이 즐거운
내 이야기로 친구가 즐거운
내 삶에 내 이야기가 많아지고
내 삶에 재밌는 내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막상 바람은 적어보니,
그 바람을 실현할 방법이나 용기가 있을지 고민이 되는군요.

코멘트

“타인의 이야기”에 대한 2개 응답

  1. 삶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빠지는 중요한 이유 한가지는 자신보다 타인 (자녀, 부모 등)이 우선이되는 삶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네요.

    1. “타고난 본성, 학습된 결과”

      인간은 타인을 위한 삶을 살 수 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타인을 재대로 알 수 가 없고, 타인이 될 수 없으니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타적 행위라는 것은 타인을 알아야 가능합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너무 복잡하니 관습이나 자기 착각 등으로 타인을 정의한다고 봅니다. 일명 후다닥 단정짓기. 또는 정의하지 않기.

      타인을 우선한다, 즉 이타적인 행동이라는 것은.
      어떤 이타적인 행동이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주기 때문이므로 결과적으로 자신을 위한 행동이라고 봅니다.

      사회성을 지닌 동물에게 이타성이 중요하게 대우 받는 것은(???)
      사회 유지에 필요한데 이타성이 그 사회에 낮은 농도(유전자)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타적 행동에 대해서 칭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타적 행동에 대해서 칭찬하거나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마저도 개체의 유전적 특성이나 경험(학습) 특성에 따라서 차이가 큰 것 같아요. 유전적 특성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서 어떤 존경받는 정치인의 정치행보는 이타적이였는가? 전쟁으로부터 자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된 군인들은 이타적이였는가? 정치를 경험해보았거나 전쟁을 경험해 보았다면 더 잘 알까요? 더 잘 알 수 있는 개체가 있고 아무리 경험해도 모르는 개체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행동으로
      자신만이 행복을 느끼기 보다는
      타인에게 행복감을 주었다고 느끼거나,
      타인과 함께 행복감을 느꼈다거나,
      하는데서 더 큰 행복감을 받는 데에는 유전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의 즐거운 모습을 보니 내가 행복하다.
      아이는 내 삶의 이유다.

      이러한 말도 개체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공주님 진심을 확인하기 어려우니, 아무튼 종들은 공주님 진심을 이해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현재 자신의 삶을 이타적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분을 보니 딴지 댓글을 달게 싶었습니다.
      삭막한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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